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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8:46
조조(장사)
송나라때 펼쳐진 태평어람에 따르면
조예의 총애를 받아 함께 자는 일이 많았다 함
이거때매 중국 대륙에서는 오랫동안 퀴어의 대명사로 찍힘
그런데 조조는 고명대신 조휴의 아들래미
즉 조예랑 조조는 친척임 ㅋㅋ
그냥 친척형이랑 놀다가 친척형 집에서 잠들었을 뿐인데
명/청대에 게이로 찍혀버린거ㅋㅋ
참고로 위 무황제 조조랑은 당연하게도 다른인물인데
무황제가 압도적으로 인지도가 높아
삼덕들도 잘 모르는 인물이라 함
친척이 아닐지도 모를일입니다....조예는 원소의 핏줄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
정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아도(조예가 조비의 아들이 아닌것 같음...)
관도대전 200년9월~201년 3월 7만 8천여명의 원소군 거의 전멸 - 하지만 기주 본진에 3만여명 존재
1만 7천여명의 조조군 거의다 생존 - 항복병을 받아들였다는 소리가 있는데...
불신의 아이콘 조조는 항복병을 죄다 참수하였다고 정사에 나옴..
기주반란 수습 201년4월~7월 관도대전 패배로 원소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기주내에 파다하게 들리고
원소에게 불만있던 세력이 기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기주로 돌아온 원소는 동생인 원담을 통해 반란을 진압하고 기주를 평정하게 됨.
원소의 죽음 202년5월 잦은 전쟁과 더불어 패배의 탓인지 뭔지 원소는 몸져 눕게 되고, 얼마지나지 않아 사망.
원상과 원담의 대립 202년5월~8월 원소가 죽고 큰아들인 원상이 기주태수에 오르지만, 삼촌인 원담이 실권을 주장하게 되고
둘의 대립이 극대화 됨.
여양전투 202년11월~203년5월 조조가 원소의 죽음후에 허도에서 정비한후 3만의 군사를 가지고 기주로 쳐들어가지만,
원상이 여양에서 조조를 격파함.
원담의 반란 203년4월~203년6월 조조와의 전투로 인해 기주에서 나와 여양에 원상이 빠져 있는 틈을 타 원담이 기주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원상이 돌아와 반란을 진압함(단, 많은 병력의 손실이 있었음)
연주전투 203년6월~204년3월 조조가 여양에서 패배하자 연주에서 다시금 반란이 일어남(192년에 일어난 연주전투와는 다름)
돌아온 조조가 황건적의 잔당들 완벽히 소탕. 구심점이 없는 놈들이라 두번째로 조조가
연주전투의 항복병들을 죄다 자신의 병사로 만듬.(황건적은 무식해서 그런지. 자신의 병사로 기용)
기주토벌 204년9월~205년1월 조조가 조비와 함께 기주토벌하러 종군. 그곳에서 원소의 둘째며느리 견씨부인을 맞이했음.
견씨부인을 만난 시기가 204년 12월 쯔음인데...(삼국지에도 정사에도 토벌에 시간이 걸렸고, 2개월간 심한 저항이 있었다고 했음, 그리고 나중에
민간인 정비하러 들어가다가 견씨부인을 만났는데...원래는 조조도 견씨를 노리고 있었음)
견씨부인의 출산 205년 조예출생...(조예의 출생을 205년이라고 그냥 해 놓았는데-이는 뭔가 이상함)
cf.정확한것은 아니나 조조나 조비나 모두들 견씨를 노리고 있었던 찰나 조비가 아버지에게 견씨가 가면 무조건 취할 것이라 생각해
본인이 취하지 않았음에도 취했다고 했고,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거짓부렁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
고로....조예가 조비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