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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06:12
육십갑자...2020, 경자년을 맞이하며...
육십갑자 (=10×12)로 반복되는 "해(년도)" 의 의미속에서도, 유독 "병(불을 의미)"과 "경(쇳소리)" 의 해에 전쟁이 많았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었습니다. 갑오경장, 갑신정변, 을미사변, 을사조약, 정미조약, 임오군란 등등 육십갑자들은 예사로 헛갈리는 단어들이 아니었습니다.
머리를 싸매는 우리들을 보면서 선생님이 칠판에 적으셨습니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한자도 아니라 한글이었습니다.
“이것만 외워 봐라.”
뭐 아무리 돌머리라도 그거야 외우지요.
반 아이들이 전부 다 주문(?)을 외우게 됐을 즈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연도 하나만 외워 봐라.
임진왜란 쉽재? 1592년이다. ‘임’(壬 )자가 붙으면 무조건 끝이 2로 끝난다.
임오군란은 그래서 1882년이 된다.
을사조약 1905년 다 알재? 민비가 죽은 을미사변은 그래서 1895년이 되는 거다.
‘갑’자가 붙으면 때려죽여도 그 해는 4로 끝난다. 갑오년은 1894, 갑신년은 1884.
병자가 붙으면 누가 뭐래도 6. 그래서 병자호란은 1636, 강화도 조약은 무조건 1876이다.
병인박해는 강화도 조약 전이겠지? 그럼 10년 전 1866이 되는 거다.”
하나의 작은 복음이었습니다.
갑을병정.... 주문만 외우면 끝자리 수는 자동으로 산출되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육십 갑자가 알고보면 간단한 거구나 싶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 주문에 따르면 ‘경’(庚)으로 시작하는 해는 무조건 끝 숫자가 0입니다. 2000년은 경진년이었고 2010년은 경인년이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스토리로 ‘불을 뜻하는 병(丙)과 쇠를 의미하는 경(庚)의 해에 전쟁이 많이 일어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차피 객쩍은 소리를 한 김에 덧붙여 보면 20세기에서 만큼은 경(庚)자가 붙은 해가 우리 역사를 뒤흔든 때가 많았습니다. 일단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것이 1910년 경술년입니다.
1920년과 1930년은 그리 큰 사건 없이 지나간 것 같지만 바로 앞 ‘기’자 돌림인 기미년과 기사년에 3.1항쟁과 광주학생운동이 휩쓸고 지나갔으니 분위기가 사뭇 달랐을 것이고 1940년 경진년은 1939년 2차 세계대전 발발과 1941년 진주만 기습의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했을 해일 겁니다.
그리고 1950년 경인년에는 수백만 한국인들이 서로 죽이고 죽은 한국전쟁이 터집니다. 그 10년 뒤인 경자년에는 4.19 혁명이 폭발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1970년 경술년에는 우리 현대사를 바꾼 인물 가운데 반드시 들어갈 이름 전태일이 스스로를 불태워 어둠을 밝혔고, 1980년 경신년에는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빛이자 비극 광주항쟁이 일어납니다.
뭐 어느 해인들 소사소난(少事少難)의 해가 있겠습니까. 육십갑자 어느 해를 짚은들 태평하시만 한 해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20세기의 경(庚 )자 해를 떠올리면 그리 상쾌하지만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있으면 뚫고 나가는 기운이 있는 법이죠. 경술년 나라는 망했지만 그 해를 넘기기 전에 우당 이회영 6형제는 그들의 거부(巨富)를 몽땅 팔아 현금화해서 만주로 망명합니다.
1920년엔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가 있었고 1950년의 한국 전쟁은 참혹했으나 결국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한국인들은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60년 전 경자년의 4월, 자칭 ‘국부’ 이승만의 독재를 견디지 못한 한국인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이 나라가 민주 공화국임을 선포했고 적어도 한국에서 ‘독재자는 종말이 좋지 않다’는 선례를 만들었지요.
80년 경신년의 광주항쟁 역시 우리 역사의 십자가이자 면류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좌절했으되 끝내는 영광으로 남은. 즉 경자 붙은 해는 우리에게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안겨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한국인들이 만만한 사람들이 아님을, 심하게 넘어지고 물구나무를 서고, 가끔 거꾸로 돌아가고, 가시에 살이 패고 발바닥이 부르터 절룩거려도 결국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람들임을 입증해 보인, 입증해 보이기 시작한 해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금 올해는 경자년입니다. 경(庚)자 징크스가 우스개로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평온하게 지나가기를, 평화롭게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않아 파란과 시련이 번갈아 닥친다 해도 그래도 우리 역사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 왔고, 뒤로 가는 듯 해도 기어코는 전진의 레일을 벗어나지 않았음을 기억하면서, 손바닥 탁탁 털고 어깨 으쓱하면서 야무지고 강단 있게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경자년에....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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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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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3: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