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탑 제휴업소】 | ||||||||||||||||||
키스방 |
건마(서울外) |
하드코어 |
건마(서울外) |
건마(서울外) |
하드코어 |
건마(서울外) |
건마(서울外) |
건마(서울) |
||||||||||
건마(스파) |
소프트룸 |
오피 |
소프트룸 |
하드코어 |
소프트룸 |
오피 |
하드코어 |
건마(스파) |
2024.02.04 13:44
짧은글 & 일반정보 - 한국프로야구 최고 인기 구단 부산갈매기 롯데자이언츠!
롯데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투수는 최동원
짧은글 & 일반정보 - 롯데자이언츠 불세출의 투수 무쇠팔 “최동원”!!
타자는 이선수가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2루수임과 동시에
'근성'으로 상징되는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선수 이자
부산 팬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였던
탱크, 악바리 박정태 선수입니다.
박정태 선수는 부산출신임에도
지역명문고인 부산/경남고. 경남/부산 상고 가 아닌
부산 동래고로 진학하게 됩니다.
아마추어 시절만해도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여서
고교 졸업 후 에는 경성대로 진학을 합니다.
대학교 졸업반이던 1990년도 에는
기량이 급성장 하면서
베이징 아시안 게임 2루수 대표가 되며
당시 유격수 이종범, 3루수 유지현 선수와 함께
주전 내야수가 됩니다.
4학년때의 활약덕분에
롯데자이언츠는 1991년 1차지명으로
박정태 선수를 지명 하게 됩니다.
1991년 시즌 개막전 1번타자로
프로 첫 생활을 시직한 박정태 선수는
신인 첫 해부터 주전 2루수를 차지하며
그해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가 됩니다.
아쉽게도 신인왕 수상은 못하였는데
그해 신인왕은 규정이닝을 채우며
방어율 1.64 / 9승 27세이브를 기록한
쌍방울의 조규제 선수가 수상 합니다.
이듬해 에도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을 하며
1992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 1등 공신이 됩니다.
박정태 선수는 2년차 부터
롯데의 중심선수이자
전국구 스타로 자리잡아가기 시작하는데
1993년 시즌 태평양전에서
더블플레이를 저지하기 위해
2루로 슬라이딩하다 유격수 염경엽과 충돌을 하게 되며
선수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골절상을 입어
세 차례의 수술을 받게 되고
2년뒤 1995년 시즌 복귀를 하게 됩니다.
복귀후 1996년 시즌에는 다시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을 수상하며
완전히 재기에 성공
각종 언론사의 올해의 재기상을 독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8-1999년 2년 연속
골든글러브 2루수의 주인공이 되고
2000년 시즌을 앞두고는 시즌 종료 후에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선수협 파동으로 인해 해외전지훈련을 하지못해
시즌이 지날수록 체력적으로 힘들어 지고
힘든몸으로 시즌을 치루다 보니
부상을 당하면서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 승선도 탈락 되고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전해에 공언했던
일본 진출도 없었던 일이 되고 맙니다.
여담으로 이시기에
박정태 선수는 부산고에 다니는
이종조카가 있었는데
이 조카는 외삼촌 박정태 선수를 롤모델로 삼고
야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훗날 이선수는 외삼촌이 부진하던
2000년 시즌때
롯데로 부터 계약금 4억을 제시 받지만
롯데가 제시한 금액보다 4배를 더받고 (137만 $)
미국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2003년 시즌 박정태 선수는 FA가 되는데
롯데는 단년계약을 제시하고
이소식이 롯데팬들에게 알려지자 롯데는
지역팬들에게 민심을 잃고
부산지역 뉴스에도 나올만큼
가루가 되도록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롯데는
2년에 6억으로 계약조건을 수정하지만
계약조건의 옵션을 수정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게 되면서 계약협상기간
종료 하루 전 계약을 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도 시즌
롯데는 리빌딩을 선언하며
젊은 선수를 중용하는 양상문 감독을 선임하게 됩니다.
이 시기 부터 박정태 선수는 2군 선수가 되버리며
8월이 되어서야 1군에 복귀를 하고
박정태 선수가 복귀한 날
관중이 평소보다 두 배가 더 입장을 합니다.
하지만 박정태 선수도 팀의 기조를 이기지 못하고
2004년 10월 11일 공식 은퇴를 발표하면서
14년의 롯데생활을 마감 하게 됩니다.
박정태 선수는 정근우 선수 등장 전 까지
사실상 비교대상이 없었던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2루수 였고
2루수 포지션을 맡고 있으면서
한 팀의 3번타자&클린업트리오 자리를
10년 이상 지켜온 선수는 KBO리그 역사상
박정태 선수가 유일한 선수 였습니다.
자이언츠를 상징하는 단어는 늘 투혼이었습니다.
늘 팀 전력은 부족함 투성이지만...
자신의 선수 생명을 갈아 넣어서라도 팀을 우승으로 이끈 최동원, 염종석... 그리고 박정태...
작년에 야구 보며 새로운 단어인 기세 를 보니 다시 가슴이 뜨거워 졌었습니다.
최소 6월달까지는 그 기세에 감동했고... 그렇게 제일호감독 시절 이후 다시 자이언츠를 외치며 행복해 했었습니다.
자이언츠가 최고의 인구 구단인 이유가 이런 불확실성 속의 변수로 인해 나올수 없는 결과를 내었던 팀이라서 그런듯 합니다.
꼴데가 까여도 까여도 계속해서 깔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죠. ㅎㅎ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 간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1000000번 잘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