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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6 10:50
암흑기의 우울한 나날이 이어지던 1991년
OB 베어스 팬들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 투수 한 명이 혜성처럼 등장 합니다.
1989년 마산청강고 졸업 후 불러주는 팀이 없어
배팅볼 투수로 OB 베어스에 입단했다가
1년 뒤 2차 3순위 지명을 받고
정식 선수가 된 배트맨 김상진 선수 입니다.
입단 이듬해인 1991년부터
OB 베어스의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며
4년동안 10-11-11-14승을 올리면서
당시 꼴지 였던 OB 베어스의 재건을 이끌었던
투수 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OB 베어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1995년 시즌에는 17승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기도 했고
17승 중 8승이 완봉승이였는데
3경기 연속 완봉승을 기록하게 됩니다.
당시 프로야구가 더 재미있었던 요소 중 하나가
외국인 선수제가 도입되기 전이라
토종 에이스들의 전쟁을 볼수 있었던 부분입니다.
삼성 김상엽 선수, 한화 정민철 선수, 현대 정민태 선수,
LG 이상훈 선수, 해태 이대진 선수, 롯데 주형광 선수,
쌍방울 김원형 선수 같이
각 구단의 토종 에이스가 있었으며
OB의 대표 에이스는 단연 김상진 선수 였습니다.
김상진은 한국프로야구 122승을 올린
대투수에 계보에 이름을 올리지만
그의 야구 입문과정은 영화로 만들어도 될만큼
정말 우여곡절이 심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2학년때 야구를 시작하게 되는데
키가 160㎝도 안되어 부모님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반대를 했지만
김상진 선수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다고 합니다.
결국 김상진 선수는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때
마산동중 야구선수가 됩니다.
하지만 중3때 야구를 시작한거라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 진학은 엄두도 못내고 있던차에
지인중 한분이 마산상고 야구부 후원회 임원이여서
가까스로 마산상고로 진학 하지만
훈련 첫날 마산상고 야구부장이 장래성이 안보인다는 이유로 퇴단을 시켜 버립니다.
입학 첫 날에 야구선수로서 퇴짜를 맞은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지역내 마산청강고가 그해 야구부를 창단했고
김상진 선수는 어렵게 전학을 가며 다시 야구 선수 생활을
이어갈수 있게 됩니다.
고교시절 김상진은 주로 2루수를 보면서 1학년을 보내는데..
고2 올라갈 무렵 갑자기 키가 20cm가 커서 180cm가 훌쩍 넘어 버립니다.
당시 어깨 하나는 좋았던 편이라
김상진 선수는 투수로 전향을 하며
3학년 졸업반이 되는데 마산 청강고가 신생팀이라
스카우트들에 눈에 띄지도 못하고
그대로 졸업을 하게 됩니다.
졸업후 갈곳이 없던 김상진 선수는 마산에서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당시 OB 베어스 선수단이
창원에 2군 훈련장을 지어놓고 창원으로 전지훈련을 옵니다.
그리고 김상진 선수의 은사였던 코치가
OB베어스 전지훈련중 공을 잘던지는 졸업생이 있는데
투수출신이니 배팅볼 투수로 써보라고 추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김상진 선수는 연봉 300만원에
배팅볼 투수로 OB구단에 취직이 됩니다.
김상진 선수의 신분이 프론트 소속인
배팅볼 투수였기 때문에
훈련과 2군경기에는 참가를 못하게 되고
누구도 훈련을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실내훈련장 그물에 대고 혼자 공을 던졌고, 모두가 퇴근한
다음에도 혼자 운동장을 달렸다고 합니다.
한시즌 내내 김상진의 배팅볼을 지켜본 코치들이나 선수들이
그의 경기를 뛰는 모습은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저정도 구위면 경기에 나가도 될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구단도 한번 키워볼 만하다는 판단을 하며
김상진 선수를 OB베어스에 입단 시키로 합니다.
하지만 김상진 선수는 연습생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선수로 전환을 못하게 되어
OB구단은 그를 1990년 2차지명으로 지명을 할테니
잘해보자 라고 언질을 미리 주었고
구경백 1군 총괄 매니저는 그를 응원하며 부모님께도
축하 전화를 드렸다고 합니다.
김상진 선수는 중학교 3학년 올라가기 직전에
야구를 시작했으니
고등학교까지 야구 한 지는 4년밖에 안 되었지만
노력과 재능이 빛을 보며 프로야구 2차 지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국가대표 출신으로
아마추어 시절부터 명성이 대단했던 선배 포수가
그에게 한마디를 합니다.
"직구에 힘이 있고 회전도 너무 좋다." 잘해보자
바로 롯데자이언츠 김태형 감독의 이 한마디로
김상진 선수는 긴가민가 했던
본인의 직구에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되며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4년 동안 베어스의
에이스로 맹활약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IMF 가 터져 베어스는 김상진 선수를
현금 6억 5,000만원에
삼성과 현금트레이드를 하고
이적후 2년동안 2년연속 12승을 거두며
2000년 시즌 FA 자격을 얻어 삼성과 3년 8억 5000만원에 재계약을 맺게 됩니다.
하지만 FA계약 첫해 부터 에이징 커브가 찾아와
7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찍고 SK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그후 계약기간을 다채운 2003년 시즌
SK에서 방출된후 은퇴를 하게 됩니다.
은퇴후에는 SK와이번스의 코치를 시작으로
삼성을 거쳐 22년만에 두산 코치로 복귀를 하게 됩니다.
여담으로...
OB 베어스에서 전성기를 보낼 때는
LG의 이상훈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시절
맞대결이 있던 날이면
잠실구장에서는 표를 도저히 구할수가 없었습니다.
표를 구할수 있는 방법은 암표 뿐이였는데...
지하철 개찰구서 부터 오늘 김상진 이상훈 을 속삭이며
다가오던 암표상들이 엄청 많았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